저녁 일곱 시 반 퇴근해서 현관 들어서자마자 목욕 담당으로 바뀌는 게 우리 집 규칙이야.
아내는 하루 종일 둘째 보고 첫째 하원까지 시키니까 저녁 목욕이랑 재우기는 내가 하기로 했어.
그건 나도 동의했고 지금도 불만은 없어.
근데 어제는 좀 이상했다.
네 살 첫째가 물 뜨겁다고 울고 두 돌 지난 둘째는 욕조 밖으로 나가겠다고 버둥대고.
샴푸 거품 눈에 들어갔다고 둘이 동시에 소리 지르는데 갑자기 귀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수건 들고 한 일 분쯤 그냥 서 있었던 것 같아.
애들이 아빠 아빠 부르니까 그제야 정신 들었어.
첫째 머리에 거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몰랐더라.
씻기고 재우고 나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손이 떨리더라..
아내한테 말하려다가 그만뒀어.
아내는 그걸 하루 종일 하는데 나는 삼십 분 하고 힘들다고 하면 염치없어 보일 것 같아서.
친구는 그래도 말하라더라. 둘 다 지친 거면 같이 알아야 방법이 생긴다고.
다른 친구는 그 정도는 다들 겪는 거니까 주말에 혼자 쉬는 시간만 달라고 하래.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지쳤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야근이 잦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냥 내가 약한 건가 싶기도 하고.
오늘 아침에 아내가 어제 목욕 어땠냐고 묻는데 그냥 괜찮았다고 해버렸어.
이런 거 아내한테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댓글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