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 모임이 끝나고 둘만 남은 건 새벽 한 시쯤이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는데 녀석이 갑자기 말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좋아했다고.
졸업 전부터였는데 말할 타이밍을 계속 놓쳤다고.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너무 놀라서.
녀석은 금방 웃으면서 술 때문이라고 얼버무렸고 우리는 각자 택시를 탔다.
집에 오는 내내 창밖만 봤다.
다음 날 아침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제 일은 없던 일로 하자. 우리 사이 어색해지는 거 싫어.'
나는 알겠다고만 답했다.
그 뒤로 녀석은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군다.
단톡방에서도 평소처럼 농담하고 모임에도 똑같이 나온다.
내 생일에는 늘 그랬듯 커피 쿠폰도 보냈다.
문제는 나다.
그날 이후로 그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녀석이 다른 사람 얘기를 하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생각해 보니 나도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다시 꺼내면 녀석이 애써 지켜온 걸 내가 깨는 게 아닐까 싶다.
친한 언니는 그냥 물어보라고 했다.
없던 일로 하자는 말은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한 말일 수도 있다고.
지금 안 물어보면 평생 궁금할 거라고.
다른 친구는 반대였다.
본인이 정리하겠다고 했으면 존중하는 게 맞다고.
괜히 꺼냈다가 몇 년 쌓은 우정까지 잃을 수 있다고.
동기 모임 분위기까지 깨질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둘 다 맞는 말이라 더 모르겠어.
다시 꺼내서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녀석이 원한 대로 모른 척하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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