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에 압류 딱지 붙는 걸 보면서 컸어. 그래서 스무 살부터 알바를 두세 개씩 뛰었고 지금은 연봉 괜찮은 회사 다니면서 서른둘에 1억 조금 넘게 모아놨다.
만나는 사람이랑은 3년 됐어. 성격이 정말 좋아. 나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것도 이 사람이고 3년 동안 화 한 번 낸 적이 없어. 우리 엄마한테도 엄청 잘해.
문제는 돈 쓰는 방식이야. 모아둔 돈이 거의 없고 기분 좋으면 친구들 밥값을 다 내. 갖고 싶은 게 생기면 할부로 그냥 사고. 빚이 있는 건 아닌데 통장이 늘 바닥이야..
얼마 전에는 내 생일이라고 백만 원 넘는 가방을 사 왔는데 고맙기보다 그 돈이면 몇 달 치 적금인데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 그런 내가 좀 싫기도 했고.
결혼 얘기가 나오니까 둘이 벌면 충분하고 돈은 쓰라고 버는 거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이 사람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가봤으니까.
근데 나는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만 봐도 심장이 뛰어. 살림 합치면 내가 모은 게 몇 년 안에 녹아버릴 것 같아서 무섭다.. 어릴 때처럼 월말마다 잔고 보면서 떨던 생활로 돌아갈까 봐.
친구들은 사람 좋으면 된 거고 돈은 내가 쥐고 관리하면 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 싶고..
내가 어릴 때 기억 때문에 겁먹은 거야? 아니면 정말 따져봐야 하는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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