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내년 봄 이사를 목표로 통장 하나에 돈을 모아 왔다. 둘 다 월급날이면 정해 둔 금액을 넣었고 외식도 한 달에 두 번으로 줄였다. 그렇게 3년 반을 모으니 대출을 조금만 끼면 계약금을 치를 만큼은 됐다.
지난주 잔액을 확인하다가 1800만 원이 빠져나간 걸 봤다. 받는 사람은 처제였다. 아내에게 물으니 처제가 사는 원룸 집주인이 갑자기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했고 날짜가 급해서 먼저 보냈다고 했다. 말하면 내가 반대할 것 같아서 일단 보내고 얘기하려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제는 착한 사람이다. 명절마다 우리 부모님 선물까지 챙기고 나한테도 늘 깍듯하다. 1년 안에 나눠서 갚겠다며 차용증까지 써서 아내에게 줬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떼일 거라는 걱정은 크게 안 한다.
내가 걸리는 건 순서다. 둘이 같이 모은 돈인데 결정은 혼자 했다. 내년 이사 계획도 그 돈이 다 돌아올 때까지는 미뤄야 한다. 반대로 우리 형이 급하다고 내가 말없이 돈을 보냈다면 아내는 그냥 넘어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내 입장도 들었다. 동생이 짐 싸서 나가야 할 판인데 회의부터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돈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계획이 몇 달 밀리는 것뿐인데 내가 처제를 남 보듯 한다며 서운해한다. 어제는 그럼 자기 월급에서 넣은 몫만큼은 자기가 정해도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 말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틀린 말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맞는 말 같지도 않았다. 지금은 서로 말을 아끼는 중이다. 돈은 돌아온다고 치고 이 일을 그냥 넘겨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면 다들 어디까지 이해하고 넘어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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