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코스모스>는 ‘모든 과학 책 중에서 가장 문학의 향기가 나고, 모든 문학 책 중에서 가장 과학의 향기가 나는 책’이다. 자연과 우주의 영역을 역사와 인문학적 시선으로까지 바라본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포용력이 이런 명작을 낳은 힘일게다.
한국에서 가장 칼 세이건과 같은 사람을 꼽으라면 이어령 교수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로그>, <축소 지향의 일본인> 등 그의 저서를 한번도 안 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를 잘 몰랐다. 그의 책이라 해도 쉽게 씌여진 책 중 하나인 <생각>에 불과했다. 사회과학책을 몇 권 집어 읽어보기는 했지만 국내 저자가 쓴 책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왕 읽는 것이니 외국 학자들이 더 글을 잘 쓰지 않았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기인할 것이리라.
이런 내가 이 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느낀 감정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이었다. 전혀 어렵지 않은 어휘로 구성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공’이 느껴졌다. 마치 우주 속의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 비유한 칼 세이건처럼.
그중 가장 독특했던 시각은 한국인의 시간 개념을 낱말을 통해 바라본 것이었다. 한국어에는 ‘내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없다. 오히려 더 먼 미래인 모레, 글피, 그글피는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한국인은 언제나 미래를 이야기한 민족이라 주장한다. 물론 단어의 존재 여부로 한민족을 ‘미래를 바라보는 민족’이라 일반화시키는 것은 결코 근거가 충분하다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기발한 발상에 대해서는 부러울 뿐이다.
끝으로 요즘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에 대한 그의 말을 되씹어 보자. “내가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독재’적 생각과 내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독선’적 생각을 뛰어넘어 이제는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어수선한 이 시국에서 중심에 지켜나가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